안녕하세요! 카미입니다. 지난 편에 이어 불안에 계속 다뤄보려고 해요.

인사이드 아웃 2🎥, 여름에 너무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불안이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속 내재된 모습이라는 데에 깊게 공감을 하였습니다.
지난 편에서는 불교☸️에서 바라보는 불안의 관점을 살펴보았는데요,
불안을 느낄 때는 멀찍이 떨어져서 '인식'을 한 다음, 내 감정선을 이해해 보는 자세 🕊️ 를 기르는 것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모두 현자가 될 거 아니잖아요!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는 없을까?!
그런 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직업군이 있죠.
바로 '철.학.자!'
특히 나의 존재. 이 근원적인 실존으로 파고든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실존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인데요.
불안은 우리의 실존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카미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 분파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은 『불안을 철학하다』2편! 실존주의자들이 바라본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시작해보죠!! 😊😊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도 철학은 꽤 최근까지도 어떻게 보면 관념적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 그 방법에 관심을 가져왔었죠.
그런데 그 전에 뭐가 있죠? '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나의 존재와 삶은 명확하게 인식되는 것이 아닙니다. 늘 불확실하고 불안하죠. 그런 점에서 실존주의자들은 불안을 나쁜 제거의 대상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필수 요소이자 철학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아무리 부자여도,
아무리 권력을 현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미래가 어떻게 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이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부여합니다. 확실하다면 답이 정해져 있었겠죠.
자유롭기에 우리는 책임을 가집니다. 또 자유롭기에 불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는 많은 사람에게는 고통입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대표적인 우리가 알고 있는 실존주의자입니다.
카미 또한 프랑스 파리에서 장 폴 사르트르가 들렀다는 레 뒤 마고 카페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했었죠 ☕☕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유명한 말도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에서 나왔죠.
이번 포스팅에서 기억해야 할 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입니다.
본질 실존 무슨 차이야? 물을 수 있겠는데요.
본질은 이상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람, 그 가능성.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실존은 그냥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태어났기에 행동을 하고, 그 순간순간의 선택이 모여지고 구성합니다. 이 선택들은 나의 본질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타인의 본질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엄청난 책임을 스스로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롭도록 선고(강요)받았다.👨🏻⚖️ 는 표현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단순한 종의 재생산이라는 생물학적 책임보다, 앞서 말한 삶의 가치와 본질을 창조해나가도록 선고받은 실존적 책임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이지요.

시험 같이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불안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실존을 써내려갑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볼까요?
키에르케고르 등 기독교 기반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이 불안에 대한 하나의 정답으로 신앙을 선택하게 됩니다. 더 헌신하고 더사랑하고, 신 앞에 자꾸 자신을 내어라는 거죠.
하지만 종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과 철학에 의해 무자비하게 부서지게 됩니다. 🫨🫨
바로 니체의 등장이었죠!!

니체는 "신은 죽었다." 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 파티)" 라 말합니다.
왜 우리는 불안하고 불행한 걸까요? 세상과 타인 때문이라는 거죠.
니체가 봤을 때 그 동안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 그 입맛들에 의해 많은 것들이 재단되었습니다.
도덕, 가치, 규범. 그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 누가 우리에게 죄책감을 부여하는 걸까요? 바로 만든 규범자들입니다.
사실은 글 한 줄에 불과하고, 그 권력자들이 바뀌면 바로 바뀔 문장들에 불과한 데도 말이죠.
그래서, 니체는 '힘'이라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고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권력자들은 입맛대로 문화를 통제하고 도덕을 조정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죄책감,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깨부수기 위해 독립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낡은 서판을 깨부수고 새로운 서판에 우리만의 가치를 담자는 겁니다.
신은 죽었습니다. 신은 우리를 돕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허무주의의 늪을 헤쳐 나가, 나의 실존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니체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생을 보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요. 하지만, 그는 그것을 떨쳐내고자 부단히 노력하였고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대작들을 저술합니다.
니체에게 불안은 그렇기 때문에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방향을 잃고 헤메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삶의 중심에 자신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의미란 없고 (이미 권력자들이 정한 것에 불과)
우리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당당히 우리의 삶을 주장하고, 우리 인생을 지배하려는 이데올로기에 맞서 응수해 나가는 겁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여러분만의 의미와 가치를 찾도록, 여러분 자신의 고유한 불안 앞에서 여러분이 용감해지도록 니체가 기꺼이 도울 것이다. 특히 여러분 스스로 ‘힘에의 의지’를 완전히 일깨운다면 그의 영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 <불안을 철학하다>, 사미르 초프라 지음 / 조민호 옮김
이번 포스팅에서는 두 명의 철학자가 바라본 불안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편에는 키에르케고르와 마르틴 하이데거로 다시 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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