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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잔

실존주의자들이 바라본 불안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폴 탈리히

by Dr카미 2024. 10. 30.

불안🫦은 '심리학'과 '철학'📖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Freepik

알다가도 모르겠는 내 마음.

분명히 행복한 상황인데도 왜 한구석에는 불안함 마음이 엄습하는 걸까요?

공존 가능한 친구일까?😯

 

지난 시간에 실존주의자인 사르트르와 그 사상적 기반을 주었던 니체가 불안을 어떻게 느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궁금한 분들은 이전 포스팅으로 고고~ 😆😆

https://vmfhdlxm98.tistory.com/3

 

오늘은 조금 더 실존주의에 깊게 빠져보려고 해요 🌊🌊

키르케고르(키에르케고르)와 폴 틸리히, 철학사에서 가장 어려운 책을 썼다고 알려진 마르틴 하이데거까지!!

너무 기대되는 라인업이죠?

 

함께하는 책은 역시『불안을 철학하다』입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어릴 때는 키에르케고르 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실존주의의 선구자였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을까요. 그의 철학과 저작들은 18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빛을 발하게 됩니다.

불안은 우리가 행동을 하기 전 느끼게 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무엇을 얻고 잃을지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바로 다음 날도 예측할 수 없기에, 늘 매일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나가는데, 이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가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해하면서도 싸워나가고 유횩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바람직한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함께하며, 자기창조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에 확립된 세상의 규범과 절차에 대한 저항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불안과 함께 나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불안을 '훈습'해야 한다는 정신분석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기창조에 유능한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기에 가능한 미래도 남들보다 더 많이 떠올려서 그만큼 불안도 더 많이 느낀다. 불안한 것도 능력이다. 불안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좋은 결과를 내도록 도와주는 우리의 잠재력이다. 우리는 불안해하는 자신에게 더는 불안할 필요가 없다. - <불안을 철학하다>, 사미르 초프라 지음 / 조민호 옮김


 

"불안을 우리 자아의 일부로 소유하고, 통합하고, 배치하자. 불안을 마주하자!"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된 철학자입니다. 

폴 틸리히! 그는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개신교 신학자입니다. 

"존재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사르트르는 자유를 선고받았고, 니체는 신은 죽었다 하였고, 이제 하다 못해 존재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존주의는 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틸리히 역시 불안을 느꼈습니다. 이 불안은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이죠.

 

존재 ↔ 비존재, 죽음

 

존재하는 한, 죽음을 인식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불안해집니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정작 죽으면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그 존재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한다는 점이죠.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물리친 것처럼,

인간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끊임없이 유한성을 인식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불안감. 이 불안은 우리 존재, 실존과 함께하기에 '존재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조금 더 확장해보면 '비존재', 다시 말해 나의 부재가 그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잘 이해가 안 가면 한 번 비유를 들어볼까요. 친구들끼리 엠티⛺를 갔다고 합니다. 나는 바빠서 못 갔어요. 

그런데, SNS에 친구들끼리 올린 사진을 보면 묘한 상실감을 느낍니다. 박탈감이 드는 거죠. '없는 나의 부재'를 거기에 이입시켰다는 거에요. 

Freepik

결국 이런 불안감을 극복해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진실 들에 대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

"죽음은 확정이며 돌이킬 수 없다"

"세상은 삶에 무관심하다"

"세상은 계속 유지된다"

 

역설적으로 이 같은 문장들은 오히려 죽음을 담담히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매일의 삶을 긍정할 용기가 생긴다는 거죠.

 


 

오늘 이야기할 마지막 철학자는 가장 논란도 많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마르틴 하이데거입니다.

Wikipedia

너무 책이 어려워서 제 은사님은 철학교수님들끼리 모여 그의 『존재와 시간』을 같이 읽고 해석하였다고 하죠.

일생으로 봤을 때는 나치에 가담하여,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이데거에게서 실존은 '죽음(우리를 기다리는 확실성)', '무(죽음 이후 알 수 없는 상태)', '피투성(던져져 있음)'이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불안이 이 세 가지 사실들을 파악하고 인식하게 해 주는 기분입니다. 기분은 분명 감정인데, 계속 느끼다 보니 인식이 된거죠. 

 

그래서 불안 없이는 내 존재와 가까워질 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존재자' 무엇인가? 에 초점을 맞췄다면 

 

하이데거는 '왜 있지?' 존재에 관해 물었고 이 '있음'을 인식하는 존재인 인간을 '현존재'라 정의하였습니다.

이 있음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일상인'이라 하며, 여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살아갑니다. 그러다 관계를 맺는 와중, 우연성을 발견하면서 불안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불안은 우리 존재를 본래적 존재 방식으로 이끕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회피하면서, 피상적으로만 존재하면서 살아갑니다. '존재 망각'인 거죠. 하지만 불안이 여기에서 '구출'하면서, 나의 존재를 찾으려고 시도하는데 이를 '기투'라고 하이데거는 명명하였고, 이 현존재가 일상인으로 살다가 불안 덕분에 본래적 존재 방식으로 기투하는 것이 실존이라는 것이죠.

너무 어렵죠?

그러면 현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자의 존재 방식은 무엇이라는 뜻이야?

 

칼은 과일을 써는 데 사용되죠. '칼'이 그렇게 사용되어야 사물의 존재가 방식이 정의되는거죠.

인간 중에서도 실존으로 기투하지 않은 피투된 존재자들은 쓰임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는 사물일 뿐이라는 거죠.

 

우리가 하이데거의 철학을 다 파악하기는 너무나도 어렵지만, 

그에게 불안은 낯섦과 섬뜩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시간에 걸쳐 많은 실존주의자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각각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보면 어려운 사상이지만, 공통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긍정적으로, 함께 가져가야 될 무언가로 보고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불안을 저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들춰내 기어이 도마 위에 올렸으면서도 토막 내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해로 생긴 오물을 씻어내고 가슴에 품으라고 권고한다. - <불안을 철학하다>, 사미르 초프라 지음 / 조민호 옮김